MBC의 예능 프로그램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2022년 첫 방송 이후 독특한 여행 콘셉트와 진정성 있는 감정선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리얼리티 예능입니다. 주인공은 개그맨이자 방송인 기안84로, 그가 본인의 삶에서 느끼는 회의감, 답답함, 그리고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세계 각국을 돌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단순한 여행 예능을 넘어서, '사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다큐멘터리적 접근과 인간적인 시선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존 예능과 차별화됩니다. 시즌1은 남미를 중심으로, 시즌2는 아프리카 등 더 깊은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으며, 시청자들에게 많은 울림과 깨달음을 선사했습니다.
새로운 시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기안84라는 인물이 지닌 특유의 세계관과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을 여과 없이 담아냅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소심한 관찰자’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며, 만화가이자 방송인으로서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속 기안84는 카메라 앞에서 특별히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습니다. 말이 없을 때도 있고, 어설프게 행동하거나 문화적 차이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결핍의 순간’들이 오히려 시청자에게는 진심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처음 남미로 떠났을 때, 언어도 문화도 낯설고 모든 것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차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배우려는 자세로 여행을 이어갑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때로는 대화를 나누며, 삶의 형태가 다른 이들의 하루를 몸소 체험합니다. 특히 볼리비아의 고산지대에서 숨이 가빠지면서도 주민들의 생활에 적응하려는 모습, 페루에서 전통 농사를 체험하고 음식문화를 존중하는 태도 등은 단순한 여행 예능이 아닌 ‘삶의 체험’ 그 자체로 느껴집니다. 기안84는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대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찾아갑니다. 시장, 마을, 버스정류장, 거리 공연장 등, 그가 발걸음을 옮기는 장소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엔 살아있는 삶이 있습니다. 그는 ‘사는 게 뭘까?’라는 물음을 각국의 삶 속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며, 시청자 역시 그 고민에 공감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여행의 표면이 아닌, 여행자 내면의 변화를 그리는 프로그램이며, 기안84는 그 여정을 담백하게 이끌어갑니다.
여행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적 서사를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는 점입니다. 프로그램은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색하고 낯선 상황 자체가 진짜 웃음을 유발하며, 그 안에서 탄생하는 감정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기안84는 사전 연습이나 대본 없이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마주하고, 제작진 또한 그 흐름을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마치 ‘같이 여행하는 동행자’처럼 프로그램을 바라보게 됩니다. 카메라 시점도 가급적 인물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따라가며, 때로는 긴 호흡으로 풍경이나 대화를 담아내 다큐멘터리 특유의 정서를 전합니다. 예능 특유의 자막이나 효과음 사용은 최소화되어 있으며, 이는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더욱 진중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기안84 특유의 엉뚱함과 제작진의 유머가 어우러져 따뜻한 웃음을 유발하는 순간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언어 장벽으로 인해 엉뚱한 소통이 벌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문화차이로 웃픈 상황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한편 시즌2에서는 이시언, 덱스 등 동료들과 함께 떠나는 형식이 도입되며, 기존의 '1인 여행자' 관점에서 ‘관계와 소통’이라는 또 다른 테마로 확장되었습니다. 기안84와 이시언의 오랜 우정, 덱스와의 세대 차이 등은 인물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리얼리티의 진정성과 예능의 유연함을 결합한 실험적인 구성으로 ‘여행 예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철학적 의미
이 프로그램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질문 때문입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본질적인 주제를 가볍지 않게, 그러나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기안84의 여행은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무기력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려 노력합니다. 그의 여행 방식은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릅니다. 관광지보다는 동네 슈퍼, 시장, 농촌 마을을 찾고, 숙소에서도 화려함보다 평범한 일상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그는 전 세계를 돌며 ‘우리와 닮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모두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환경에 살고 있지만, 일하고, 먹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기안84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판단보다는 관찰, 해석보다는 체험을 선택합니다. 이 점이 시청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줍니다.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공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은 진행됩니다. 또한 시즌이 거듭되며, 그의 여행에는 점점 ‘나눔’과 ‘연결’의 요소도 더해졌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소중한 감정을 주변 사람과 나누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함께 나누려는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시청자에게도 전이되어, 단지 ‘부럽다’, ‘가고 싶다’는 감정을 넘어서 ‘나도 지금의 삶을 돌아봐야겠다’는 내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결과적으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프로그램입니다. 한 명의 여행자를 통해,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우리도 삶의 소중함과 현재를 사는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이처럼 조용한 울림을 전하는 여행 예능은 드물며, 기안84의 여정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동기부여를 줄 것입니다.